횡단하며 생각하기

횡단을 시작하며

비판지리학자들은 대중을 향한 발언에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Stuart Elden이 뛰어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도시 연구 분야에서 대중적 담론을 주도하는 쪽은 도시주의 부스터들, 스마트시티 전도사들, 디자인씽킹 컨설턴트들이다. 도시를 권력의 문제로 사유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생산의 실패가 아니라 유통의 실패다. 비판적 도시 연구는 충분히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담론은 학술 회로 안에서 순환할 뿐, 내가 연구하는 도시화 과정은 그 회로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정책의 창이 열리고 닫히고, 공적 논쟁이 타오르고 꺼진다.

Urban Traverse는 이 간극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도시, 공간, 권력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주로 동아시아에서, 그러나 동아시아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한국은 40년 만에 도시화율 28%에서 92%로 올라간 사회다. 콘크리트가 통치가 되고, 아파트 평수가 계급이 되고, 분양이 동의가 된 체제. ‘기적’으로 불릴 뿐, 여전히 적절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어휘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고, 이 Substack은 그 작업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장소다.

여기서는 동아시아 도시 권력과 공간 정치에 대한 분석적 에세이, 개념 하나를 붙들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곳까지 밀어붙이는 이론적 개입, 그리고 내가 통과하는 도시와 고속도로와 건설 현장에서 오는 인프라 디스패치가 교차할 것이다. 저널에는 실을 데가 없지만 종종 가장 중요한 논증의 씨앗을 품고 있는 현장적 사유들이다.


왜 Urban Traverse인가

트래버스(traverse)는 경사면의 결을 가로지르는 선이다.

측량술에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신 지형을 관통하며 지도를 그리는 방법이다. 등반에서는 정면으로 오를 수 없는 벽면을 옆으로 횡단하는 기술이다. 인식론적으로는, 지배적 시선의 결을 거스르는 사유의 궤적이다.

내가 여기서 만들려는 것이 그런 종류의 지식이다. 도시라는 지형 안에서 움직이면서, 지배적 홈을 타고 넘으며 횡단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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